김지혜

잔상 (殘像)

1. 외부 자극이 사라진 뒤에도 감각 경험이 지속되어 나타나는 상.
2. 지워지지 아니하는 지난 날의 모습


잔상이란 외부의 자극이 사라진 뒤에도 감각 경험이 지속되어 나타나는 상, 지워지지 아니하는 지난날의 모습, 잔인하게 상처를 입히는 일, 또는  그 상처들을 아울러 말한다.
나는 나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기억을 바탕으로  본인이 느낀 감정들의 잔상에 대해 작업을 하고 있다.

감정이란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상태로 스스로 지우거나 새로 다시 시작할 수 없으며 그러는 동안에 본인의 기억 속에서 감정들은 여러 모양으로 쌓이거나 엉켜 잔상의 형태로 남아 응어리져 있는 상태이다. 나는 나의 기억이나 감정들을 묻거나 스며든 자국이나 얼룩으로 표현하여 작업을 통해 본인의 감정을 터트리고 해소하고자 한다.
 기억은 이전의 경험이나 인상을 의식 속에 간직하다 어느 순간 떠올리게 만든다. 사람들이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이전의 경험을 통해 느꼈던 감정들도 따라오게 되는데 이전의 경험들이 쌓여 역사성을 띠게 되고 이것이 감정을 느끼는 본인에게 큰 영향을 준다.
나의 기억은 장면이나 사건으로서가 아닌 감정으로서 기록된다. 단순한 암기력처럼 외우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있던 기억은 떠올리는 순간 현재의 나와 융합해 재구성되어 나타나게 된다. 감정들은 내면에 잠재되어 실제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므로 피부라는 매체를 통해 시각화되도록 재구성하였다.
주변 사람들의 피부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왔으며 기억이나 감정은 시각적인 물성을 지니고 있지 않고 그 순간이 지나면 그 때 느꼈던 검정은 무뎌지고 옅어지므로 피부의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이미지를 차용하기 보다 모호하고 간접적인 방법을 채택하여 자의적으로 구상하여 작업하였다.

피부를 모티브로 가져온 아유눈 살이라는 물성의 느낌 때문이다. 나의 기억 속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살이 가지는 느낌 중에는 사람과 사람이 접촉을 함으로서 애정을 드러내는 느낌이 있는데 연인의 키스가 아니더라도 가족의 포옹이나 친구와 악수하는 소소한 행위들을 보면 살과 살이 맞닿으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중화시켜 심리적으로 친밀성을 갖게 만든다.
 누구나 현재를 살아가며  외부의 자극을 받고 그러한 여러 경험을 통해 감정이 쌓여간다.
그러나 그 감정들을 해소하지 못한채 지나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사회는 빠르게 흘러가고 거기에 맞추기 위해 사람들은 고군분투하지만 따라가지 못할 때나 멈출 때 상실감을 메워줄 장치가 잘 이뤄져 있지 않다. 
개개인이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히 마주볼수록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주 봐야만 서로 존재 이유와 의미를 알고 받아들일 수 있다. 
감정이라는 것은 한가지만으로 이루어져 있는게 아니다. 여러 감정은 서로 존재 이유와 의미가 있으며 상호 공존한다. 
본인이 가진 모든 상처는 단순히 본인이 아팠다는 기억만 남기지 않는다. 
견뎌냈다는 사실도 말해준다. 본인의 작업은 과거의 기억이나 현재의 아픔을 이겨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본인의 기억과 감정을 그대로 공유할 수는 없지만, 작업을 통해 ㅇ;러한 감정들이 본인의 작품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